지난 2017년 6월 2일 새벽, 필리핀 마닐라의 유명 카지노에서 발생한 총격·방화사건은 사상 최악의 카지노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요지경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필리핀 마닐라 현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6월 2일 오전 0시께(현지시각) 마닐라 중심지의 리조트월드 마닐라 카지노 건물 2층에서 현지인 제시 카를로스(43)가 총격과 방화를 일으켜 한국인 1명을 포함, 3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건이 종료된 뒤 오스카 알바얄데 마닐라 지방경찰청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총격 방화범 카를로스가 세 아이의 아버지로, 전 재무부 직원이라고 밝혔다.
카를로스는 카지노에서 하루에 4만 페소(100만 원)이상 베팅하던 도박중독자였고, 은행부채만 400만 페소(1억 원)에 달했으며 사채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화범 카를로스는 재무부에 근무하던 세재전문 공무원이었으나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날린 부채 등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공직자 재산 불성실 신고) 사실이 밝혀져 해고되었다.
또한 카지노에 중독된 그는 2017년 4월 3일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필리핀유흥게임공사(카지노 공기업)에 의해 모든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의 자동차와 가족의 재산은 모두 처분한 상태라서 재산이 한 푼도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알바얄데 청장은 “이번 사건은 테러 공격이 아니라 도박 빚에 빠진 한 남성의 단독 범행이었다. 카를로스는 범행 후 1억 1300만 페소(약 26억 원)에 달하는 카지노 칩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호텔의 5층 객실에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사건 직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를로스의 아버지 페르난도는 사건직후 “아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었지만, 정신질환은 없었다”며 “범행에 사용한 총기를 어디에서 구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사고당시 호텔카지노 3층 VIP룸의 정켓방에 있던 한국인 에이전시 K씨의 회고.
“평소 카를로스는 성격이 좋은 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카지노를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표정과 사람이 바꿔지기 시작했다. 범행이 나기 얼마 전부터 카를로스가 카지노에서 게임하는 뒤편에 항상 젊고 덩치가 큰 남자가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고 후 생각해보니 카를로스에게 돈을 빌려준 꽁지의 행동대원으로 추정된다. 평생직장인 공무원 신분도 박탈당하고 거액의 부채를 진 그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총기와 휘발유를 구입한 그는 사건 당일 바바리코트를 입고 품속에 소총과 2리터 용량의 휘발유 담은 통을 휴대했다.
1층은 보안이 삼엄했지만 쇼핑센터에서 입장하는 2층 카지노 입구는 보안이 다소 취약했다. 특히 밤 12시 교대시간에는 출입구를 지키는 직원이 1, 2명에 불과했다. 사고 직전 카를로스가 2층 쇼핑센터에서 카지노로 입장하는데 정식 출입구(게이트)가 아닌 보안직원이 출입하는 곳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출입구 경비를 서던 여자 보안이 소리쳤다. ‘헤이, 다시 돌아 나와서 게이트로 입장하세요’하고 말했다. 당시 게이트에는 여자 보안 직원 단 1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자 카를로스는 품에 숨겼던 소총을 꺼내 천정으로 3발을 쏘았다. 총소리에 놀란 여자 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바깥으로 도피했다.
상급자나 상황실에 보고를 하지 않고 자신만 살기 위해 현장을 벗어난 것이었다. 총소리에 놀란 2층의 고객들이 모두 자리를 피한 사이 카를로스는 휘발유를 슬롯머신 기계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런 다음 그는 총을 들고 칩이 쌓여진 뱅크박스로 들어가 칩을 훔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인명피해가 많이 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나는 늦은 시간에 평소처럼 카지노 VIP 룸 입구의 3층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있던 고객과 직원들은 100여 명에 달했는데 총소리에 놀라 일부는 밖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는 테러범이 습격한 것으로 잘못 알고 3층의 구석진 방이나 화장실 등에 숨어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20세 초반의 젊은 딜러들도 10여 명이 숨졌는데 모두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부검결과 밝혀졌다. 그 딜러들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착하고 성실한 직원들이었기에 가슴이 더 아팠다. 나는 당시 총소리를 듣고 연기가 나는 반대방향으로 고객들과 대피해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지난 2009년 8월 28일 카지노와 레스토랑 등을 부분 개장하면서 문을 연 리조트월드 마닐라는 2010년 11월 25일 그랜드 오픈한 이후 오카다 마닐라 개장 전까지 필리핀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는 6성급의 맥심호텔(172실), 5성급 매리어트호텔(342실), 4성급 레밍턴호텔(700여 실)을 비롯해 4개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 어린이 오락실, 대형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 450대의 게임테이블과 2000여 대의 슬로머신을 갖춘 카지노는 필리핀 카지노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과 수익을 올리는 곳이다.
한편 경찰이 수사를 통해 리조트월드 마닐라의 총격·방화사건이 도박중독자에 의한 단독범행으로 밝혀지자 필리핀 당국은 총격·방화사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리조트월드 마닐라 측에 1개월간의 영업중단 조치를 내렸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최소 6개월~1년 이상 영업중단을 내릴 상황이었지만 필리핀은 1개월 영업정지 처분으로 사회적 파장을 잠재우고 말았다.
아울러 회사 측은 강도방화범의 조기 차단과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카지노 보안직원 대부분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1개월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카지노와 리조트 영업을 못한 리조트월드 마닐라 측은영업중단으로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화재현장인 2층은 물론 일반 카지노 영업장인 1층 및 VIP 영업장이 있는 3층 VIP룸에서도 게임테이블에 보관 중이던 게임용 칩 가운데 무려 1000억 원 이상의 칩이 분실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카지노 측은 사고당시 카지노 영업장 내부에 연기와 화염 때문에 CCTV 검색이 불가능해 칩 절취범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카지노 안에서는 현금과 동일하게 유통되는 칩이 대거 분실된 것은 화재진압에 나선 소방대원과 경찰관들이 칩을 절취한 것으로 의심했다. 방화사건이 나자 고객과 직원들은 카지노 영업현장을 방치한 채 모두 몸만 빠져 나간 상태였다.
카지노 게임 테이블과 칩을 보관하던 곳을 카지노 측에서 화재진압 이후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칩박스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리조트월드 마닐라 직원들을 통해 절취한 칩을 교환하려는 시도가 수십 차례 이상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리조트월드 마닐라의 한 관계자는 “수억 원의 칩을 갖고 있는데 현금으로 교환해 주면 50%를 수수료로 준다는 전화가 자주 온다”며 “이런 전화가 오면 훔친 칩을 자진 반납하면 용서해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도범으로 신고하겠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칩이 도난 된 사실을 확인한 이후 CCTV를 통해 절취 범을 확인하려 했지만 화재로 발생한 연기와 그을음 때문에 식별이 불가능했다”며 “사고가 나면 카지노 칩을 전면 교체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칩을 계속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당시 훔친 칩을 현금으로 교환하다가 경찰에 넘겨진 칩 절도범은 1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당시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은 리조트월드 마닐라의 카지노 직원을 비롯해 카지노 고객들이 대부분이며 유족들에게 1인당 3000만원~1억 수천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 직원들은 임금이 낮은 상황에서 보상제도 역시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턱없이 낮은 보상을 받았지만 억대의 보상을 받은 일부는 유족이 힘 있는 부서에 있기 때문에 많은 보상을 받은 것으로 현지 교민은 전했다.
특히 리조트월드 마닐라가 1개월의 영업정지 이후 7월 3일 개장하면서 카지노고객들이 감소할 것을 우려했으나 카지노와 쇼핑센터에는 전혀 동요 없이 고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현지 교민회 관계자는 “총격 방화사건으로 1개월 영업정지 이후 이미지 타격으로 고객들이 급감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고객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성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국인 같으면 대형 참사로 인해 발길이 뜸할 것인데 필리핀은 전혀 딴 세상”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금까지 카지노 역사상 화재사고는 지난 1980년 11월 2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 호텔 카지노 화재 사고가 꼽힌다.
‘카지노 황제’ 커크 커코리언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1억 2000만 달러를 투자해 1973년 완공된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는 당시 세계 최고의 카지노호텔이었다.
객실 2100개의 매머드급 호텔인 MGM그랜드는 카지노 직원만 4500여 명에 달했다.
사고가 나던 날 MGM그랜드 호텔의 객실은 99%가 찼고 카지노에도 많은 고객이 북적였다.
이날 오전 7시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옮겨 붙으면서 연기 기둥이 하늘로 1마일이나 치솟았다고 언론은 전했다. 이날 화재로 호텔 투숙객과 카지노 고객 85명이 사망했다. 당시 CEO인 커코리언과 동업자, 보험회사는 유족과 부상자, 및 그 가족에게 7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생각의 혁신, 라스베이거스에 답이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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